주의사항
: 시간에 쫒겨 퇴고의 시간이 매우 짧았습니다. 어색한 부분이 평소보다 많습니다.
그래서 캐릭터의 모랄도 굉장히 없습니다.
켄마와 아카아시의 커플링 순서는 먼저 서술되는 사람을 먼저 적었습니다. 켄쿠로에 치중되었다기 보다는 켄쿠로+아카쿠로의 느낌이 더 강합니다.
보라색 하늘이 보랏빛 물을 빨아들여 더욱 진해지기 시작하는,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한 저녁 여섯시에 시작되는 연회. 달보다 노란 불빛이 이끄는 연회장에는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오오삼삼 이야기를 나누고 둘 씩 짝을 지어 춤을 추고 있었다. 붉은 실크로 만들어진 정해진 길을 따라 하얀 대리석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미로정원이 보이는 테라스에서 달빛을 받고 있는 켄마가 있었다.
“켄마, 오래 기다렸어?”
“아니.”
그러면 다행이고. 일단 먹어. 쿠로오는 그런 이야기를 하며 켄마에게 애플파이가 담긴 그릇을 내밀었다. 켄마는 고맙다는 말을 한 후에 그릇을 받아,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켄마, 그런데 왜 이 파티에 참여한다고 했어?”
“왜?”
“이상하잖아. ‘밤하늘처럼 사랑에 폭 감싸이고픈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이름을 가진 연회라니. 애초에 모임은 인원이 좀 적어야 되잖아? 그런데 연회라는 이름이 붙었고, 사람도 많다고?”
“쿠로,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네. 그래서 그런가?”
“뭐?”
“아니야.”
쿠로오의 물음에 켄마는 테라스 넘어 미로정원으로 시선을 돌렸고, 쿠로오도 켄마의 시선을 따라 켄마가 보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중앙의 동그란 원을 중심으로 얽혀있는 초록빛 미로. 목적지에 도달하면 연인과의 밀회를 보장한다는 듯 석제인 탁자 하나와 나무로 된 의자가 단 두 개. 그리고 그 주위를 요정의 원처럼 감싸고 있는 여러 색상의 아이리스.
“아이리스가 조금 이상하지만, 잘 꾸며진 정원이네.”
“쿠로, 감상은 그게 다야?”
“어, 왜 의자는 나무일까 하는 의문도 약간? 그것보다 비밀만남을 할 수 있게 하면서 좋은 소식을 전달해 달라는 꽃말을 가진 아이리스는 좀 이상하잖아.”
“보라색도 있잖아. 행운을 바라는 아이리스.”
“하지만 기쁨의 전달자라는 꽃말을 가진 자주색과 하얀색 아이리스가 미로 중앙에 있다면, 뭔가 불륜 같잖아? 불륜은 범죄라고?”
“왜 불륜이라고 생각해? 미로가 연인들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대답을 고르며 입술을 만지작거리는 쿠로오를 보는 켄마의 눈이 달빛처럼 노랬다.
“미로정원은 처음에는 어렵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지잖아. 사랑에는 ‘이것이 최고의 사랑이다.’라며 한계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도달점이 있다는 게 마음에 안 들어. 그 이후의 이야기가 없다는 느낌이야.”
“쿠로는 계속 변하는 사랑을 원해?”
“아니. 아끼고 다 주고 싶고 항상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는 사랑을 원해. 일정량만 있으면 갈 수 있는 정원보다는 눈처럼 계속해서 쌓일 수 있는 사랑을 원해.”
“그렇구나. 그러면 이제 내려가자, 쿠로.”
켄마가 쿠로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쿠로오는 그 손을 잡으며 켄마를 따라 홀로 올라왔던 계단을 같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미로정원 더 보고 싶던 것 아니었어?”
“이제는 필요 없어졌어. 쿠로가 원하면 그 정원에 갈 생각은 있었지만, 쿠로가 원하지 않으니까.”
“한 번쯤은 갈 수 있어.”
“한 번이면 소용없어. 계속해서 있는 것이 아니면 갈 필요 없어. 그리고 나도 눈처럼 쌓이는 게 좋아졌어.”
“그래? 그러면 나중에 눈 덮인 곳을 같이 보러 가자. 따뜻하게 입고 풍경이 멋진 숙소에 가서, 애플파이와 코코아를 양손에 쥐고 눈이 내리는 걸 천천히 보자.”
“보러 간다면서 보는 곳은 결국 숙소 안이야?”
“보는 건 좋지만, 역시 감기 걸리는 건 싫으니까. 건강을잃을 수 있잖아.”
쿠로는 겁이 많네. 켄마의 중얼거림에 쿠로오가 웃음으로 답했다. 신중한 거라고 해 줘. 감기에 걸리면 아픈 시간이 생기고, 그 동안은 아무것도 못하게 되니까.
켄마가 쿠로오를 잡은 손에 좀 더 힘을 줬다. 켄마의 온기가 쿠로오의 손바닥에 더 닿았다.
“내가 더 따뜻하게 해줄게. 그러니까 보러 가자. 감기는 걸리지 않을 거야.”
켄마의 말과 함께 대리석 계단이 끝을 고했다. 그러나 이미 붉은 실크에 발을 올린 쿠로오는 대답을 회피했다.
“난 아직 여기에 있는 게 좋아. 아직은 보러 갈 생각이 없어.”
“그래? 그러면 홀에서 춤추자. 네가 있는 곳이 내가 있을 곳이야.”
“그건 얼마든지.”
쿠로오가 먼저 켄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켄마는 그 손을 잡고 쿠로오를 따라 홀의 구석으로 향했다.
“쿠로, 왜 여기야?”
“네가 사람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니까.”
“길에 있으면 다른 사람은 누구든지 맞춰주는 거야?”
“쿠로오 씨가 친절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
쿠로오와 켄마가 손을 잡고 춤을 추려던 순간, 잠깐-이라는 말이 들렸다.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쿠로오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카아시가 서있었다. 켄마와 쿠로오와 같이, 정장을 입고서.
“코즈메. 내가 어필하기도 전에 춤을 추는 건 반칙이야.”
“이것 역시도 쿠로의 선택이야.”
“그러면 쿠로오 씨, 제게도 시간을 좀 주시겠어요?”
아카아시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쿠로오에게 말을 건넸다. 쿠로오는 손을 잡고 있는 켄마를 슬쩍 보고, 다시 아카아시를 바라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다녀와, 쿠로. 켄마의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쿠로오는 켄마에게 손을 흔들고 아카아시를 마주했다. 아카아시는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며 쿠로오에게 동행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너무 정중한 것이 아니냐며 쿠로오는 웃었지만, 그래도 아카아시의 손을 잡고 따라갔다. 아카아시와 쿠로오는 익숙한 붉은 실크를 지나 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가는 것에 쿠로오는 잠시 주저했지만, 아카아시가 곧 돌아올 거라는 말에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미로정원을 향해 가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아카아시는 고개를 저으며 다른 곳으로 간다고 말했다.
쿠로오는 아카아시의 손을 잡고 은하수 아래 오솔길을 걸었다. 연회가 열리는 건물이 멀어지고 오솔길 옆에 만들어진 연못이 별빛 사이로 까만 공기를 품었다. 떨어져서 숲을 볼 수 있도록 잘 정리된 오솔길 옆에 세워진 울타리가 사라지도록 걸었을 즈음, 아카아시는 원하던 장소에 도착했다. 밤하늘이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돗자리가 깔려 있었고 그 옆에는 피크닉 바구니가 있었다.
“미리 와서 준비한 거야?”
“쿠로오 씨를 만나는데 이 정도는 준비해야죠.”
“알았다면 간식정도는 준비했을 텐데.”
“제가 하고 싶었어요. 쿠로오 씨를 위해서.”
싱긋 웃는 아카아시를 보며 쿠로오는 아카아시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돗자리에 앉으니 별이 쏟아지는 것 같다고 쿠로오는 느꼈다. 바람이 꽃향기를 가져다 두어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풍경에 취해버릴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아카아시의 목소리가 쿠로오를 깨웠다.
“만들어 왔어요. 좀 드세요.”
“고마워. 어라? 주먹밥이 아니네?”
쿠로오는 아카아시가 건네준 샌드위치를 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카아시는 주먹밥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눈을 껌뻑이던 쿠로오는 다시 여유로운 표정으로 돌아와 말을 시작했다.
“아카아시, 피크닉에는 샌드위치파야?”
“샌드위치가 제일 무난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주먹밥은 제가 좋아하는 거지, 쿠로오 씨가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요.”
“아니야, 좋아하는 편이야.”
“싫어하는 편도 아니시고요.”
그리고 서양식 느낌이라서 좀 맞춰본 것뿐이에요. 아카아시의 말에 쿠로오는 조금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오는 연회장에 갔었고, 모형정원이 보이는 테라스에도 있었다. 이정도면 서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지.
“꽃이 서양식이 아니라서 마무리는 조금 이상하지만요.”
“그래도 향기 굉장히 좋은데?”
“예. 이름도 예쁘지만 향기가 굉장히 좋아요. 그래서 이곳을 선택했고요.”
아카아시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 방향에는 자주색 꽃이 가득 핀 난으로 가득했다. 마치 나비가 잎 위에서 날개를 접고 쉬는 것 같아 보이는 꽃이 보였다.
“예. 그래서 이름이 호접란이에요.”
“난은 온실에서 자라지 않나?”
“기후만 따뜻하면 이곳에서처럼 밖에서도 잘 자라요. 그래서 좀 많이 모아봤어요.”
가까이서 보실래요? 아카아시의 말에 쿠로오는 아카아시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모아두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지 발걸음을 옮긴 곳에는 호접란으로 가득했다. 많은 나비가 날개를 접고 쉬면서 진한 향기를 뿌리고 있었다.
“정말 아름답다. 호접란의 꽃말이 왜 ‘사랑이 날아온다.’라고 하는지 알겠어.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보면 정말 사랑이 날아올 것만 같아.”
“지금 사랑이 날아왔나요?”
“뭐?”
“좋아하는 사람과 보면 사랑이 날아올 것 같다면서요. 전 쿠로오 씨와 호접란을 함께 보니 사랑이 날아왔거든요.”
그래서 제 마음에 이렇게 앉았어요. 아카아시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바닥을 제 가슴에 붙였다. 바람에 날아온 꽃잎이 가슴에 붙은 것을 바람이 다시 가져가지 못하게 누르고 있는 것처럼 부드럽게 누르고 있었다.
쿠로오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항상 위에 서 있던 익숙한 붉은 길은 보이지 않았고 아카아시와 같이 온 오솔길조차도 저 멀리에 있어 쿠로오는 어떻게 해야 제일 안전하게 제가 다니던 길로 돌아갈 수 있는지 가늠했다.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멀리 나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 대답을 하실 필요는 없어요. 쿠로오 씨가 원하는 곳으로 돌아가서 나중에 들어도 됩니다.”
쿠로오는 아카아시의 말을 듣고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아카아시와 눈을 맞췄다. 아카아시의 입에서 다음 말이 나오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동안만.
“호접란에 있는 다른 꽃말은, ‘애정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장소를 선택했어요. 쿠로오 씨에게 제가 사랑하는 마음이 많다는 것을 알릴 수 있도록.”
“마음은 고맙지만, 역시 이런 건 조금 더 생각을 해야 되지 않을까? 중요한 일이잖아.”
“예. 그러면 춤이라도 출까요? 달밤의 왈츠.”
아카아시의 눈웃음에 쿠로오가 홀려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뒤에서 들려온 켄마의 말만 아니었다면.
“아카아시. 너도 쿠로와 둘이 있을 때 춤을 요구하잖아?”
“코즈메 너도 그랬으니까.”
“눈웃음으로 쿠로를 꾀려는 것은 관둬.”
“꾀는 게 아니야. 내가 가진 좋은 점 중 하나를 쿠로오 씨한테 어필하는 거지. 제일 잘 먹히는 걸로.”
코즈메, 너도 웃는 걸로 어필해봐. 아카아시의 도발에 켄마가 걸려들 것 같아서 쿠로오는 둘의 사이에 손을 집어넣었다.
“여기서 그만하자. 시간이 너무 늦었어. 집으로 돌아가자.”
“쿠로, 가기 전에 대답해줘. 누구와 춤을 출 거야?”
“춤? 춤이 여기서 왜 필요한데? 풍경이 멋있어서?”
쿠로오의 말에 켄마와 아카아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굴을 찌푸리기 시작한 켄마를 보며, 아카아시가 입을 열어 쿠로오에게 말했다. 춤은 데이트 신청인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뭐라고? 데이트 신청?”
쿠로오가 놀라서 입을 열었다. 소리를 지른 것 같아서 눈을 감았다가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수습하려는데 아카아시와 켄마를 빼고, 시야에 비친 것이 달랐다. 쿠로오는 달이 있는 밤과 꽃이 핀 야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햇살이 비치는 방 안에서 의자에 편안히 앉아서 어떤 인형을 껴안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쿠로오는 말도 못하고 품에 안고 있던 인형을 강하게 쥐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인형의 감촉은 진짜였다.
“쿠로, 그래서 누구와 춤추기로 했어?”
“예. 잊기 전에 빨리 말해주세요, 쿠로오 씨.”
“춤이고 뭐고, 데이트 신청이라며! 놀라서 깼는데 그걸 어떻게 알겠, 어, 어-. 어? 꿈?”
쿠로오가 꿈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꿈과 꿈을 꾸기 이전의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하자, 켄마와 아카아시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꿈이라면 솔직해져서 선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코즈메, 최면 암시가 너무 약했던 것은 아니야?”
“오히려 쿠로는 잘 걸린 편일걸. 봐, 초보자인 우리한테도 걸렸잖아.”
켄마와 아카아시의 말을 배경음으로 들으며 쿠로오는 마른세수를 했다. 최면 암시를 왜 했는지까지 다 기억났다. 어제 배구부 연습시합을 하면서 켄마가 지나가듯 최면 암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쿠로오는 켄마가 관심을 보인 것이 신기해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해보자고 했으며, 아카아시는 자신도 최면 암시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면서 구경해도 되냐고 물었다. 기껏해야 ‘나는 꽁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정도의 최면 암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쿠로오는 별 걱정 없이 의자에 편하게 앉았었다.
“하지만 그게 데이트로 이어지는 질문인 줄은 몰랐지.”
쿠로오는 본심이 입 밖으로 나왔다는 것에 놀라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눈치가 좋은 두 세터는 이미 저 말이 왜 나왔는지도 알 수 있을 테고. 어떻게 넘어간담?
“쿠로가 선택하면 돼. 누구와 데이트를 하고, 최종적으로 누구와 연인이 될지.”
“아니, 그래도 이건 갑작스러워서-.”
“쿠로오 씨는 겁이 많은 편이라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도 그것을 눌러서 티를 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쿠로오 씨가 코즈메를 보는 눈빛을 보고, 코즈메에게 네가 쿠로오 씨에게 마음이 있으면 먼저 고백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쿠로가 아카아시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고 아카아시한테 너도 마음이 있으면 빨리 고백하라고 말했고. 하지만 아카아시와 이야기를 종합하다보니, 쿠로가 우리 둘 다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래서 쿠로에게 도움을 주려고-.”
“너무 난폭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쿠로는 절대로 고백할 타입이 아니야. 계속 봐왔는걸.”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쿠로오는 말을 마저 이을 수 없었다. 켄마의 판단은 정확했다. 분명 들키지 않았다면 계속 가슴 속에 묻어두다가 색이 바라게 되었을 즈음 꺼내보고, 그때 좋아했었지-라면서 회상을 하겠지. 그래서 들키지 않게 한다고 조심을 한 것이었는데, 설마 켄마와 아카아시가 함께 의견을 나누었을 줄은 몰랐다.
그러면 이제 선택해야 하는 건가? 쿠로오는 두 눈을 손으로 가렸다. 좋아한다. 그것은 분명 맞았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한다. 선서를 할 때 하나, 하나 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열을 가리지 않고 둘 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안. 지금 당장은 누구를 선택한다고 말을 하지 못하겠어. 그리고 나중에도 대답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나도, 아카아시도 쿠로에게 중요한 거지?”
“응.”
“쿠로오 씨, 그러면 한 명씩 따로 데이트를 해서 더 쿠로오 씨의 마음을 두근거리는 사람을 정하는 건 어떨까요?”
“미안. 그것도 무리야. 양다리 같아서 양심이 찔리기도 하고, 만약에 한다고 해도 선택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니까 모른 척 해주면 안 될까?”
고백도 안 하고. 한 명이랑 이어지지도 않고. 속으로만 좋아하고 있을게. 사랑의 색이 금방 빠질 수 있도록 노력할게. 쿠로오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이미 다 드러난 것을 숨기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쿠로오가 믿는 사실이었다.
아카아시와 켄마는 쿠로오를 보며 말을 듣다가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숨을 내뱉고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 그러면 우리 둘 모두를 선택해.”
“뭐?”
“양자택일이 안 된다면 둘 다 선택하는 방법밖에 없잖아.”
“어차피 둘 다 놓지도 못할 것 같고요.”
양다리잖아? 그거 한 명한테만 온전히 다 줄 수 없다는 굉장히 심각한 사랑이라고? 쿠로오가 둘의 결정이 이상하니 어서 철회하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쿠로오의 다급함과는 다르게 켄마는 느긋하게 게임기를 켜서 게임을 시작했고, 아카아시는 여유롭게 책을 꺼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 하나로는 쿠로가 원할 만큼의 애정을 쿠로에게 줄 수 없어. 그러니까 같이 애정을 줄 상대가 있다면 좋은 거지.”
“저도 배구를 하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코즈메한테 비하면 원거리니까요. 제가 부족한 부분을 코즈메가 채워줄 수 있는 사랑이라면 같이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아니, 그러니까 둘이 그렇게 결론 내리지 말라고!”
“아, 죽었잖아. 쿠로, 소리 지를 거면 나가서 질러줘.”
“저도 한창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니 클레임은 나중에 걸어주세요.”
대화를 그만하기를 바라는 켄마와 아카아시의 말에 쿠로오는 입을 다물었다. 한 번에 두 사람을 다 좋아하게 된 자신도 문제지만, 선택을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둘이 같이 나눠 사랑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한 두 사람도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쿠로오는 몸을 일으켰다. 집중을 하다보면 입이 심심할 테니 먹을 거라도 가져다 줘야지. 어떤 음식과 어떤 음료가 좋은지 두 사람에게 물어보려던 쿠로오는 입을 닫았다. 이미 저 둘이 무엇을 더 선호하는지는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는 쿠로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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