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 오메가버스 세계관입니다. 야한 것은 아마 없을 예정입니다.
: 등장인물의 나이가 원작과 차이가 있습니다.
: 캐붕이 있습니다.
: 앞부분에 병원 묘사가 있고, 사망을 암시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사망소재는 나중에 더 나올 수 있습니다.
: 차원이동이 있습니다.
: 켄쿠로 베이스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쿠로오가 될 예정입니다.
: 주의사항은 편마다 더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 제목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켄마는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났다. 수업중인 교실이라 모두의 이목이 쏠렸지만 켄마는 그저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작년이면 생각도 하지 못할 일을 요즘 들어 너무 자주한다고 켄마는 생각했다. 엮이는 것 없이, 주위에서도 아무 티 없게 조용히 살았지만 오늘처럼 답답한 날에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작년부터였다. 작년에 쿠로오가 쓰러진 뒤로 켄마는 변했다. 그 후로 마음이 갑갑해서 한 곳에 얌전히 있을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오래 있는 곳은 쿠로오가 있는 병실이었다. 그 외의 장소에 있으면 자율연습 시간에 리시브를 100번도 더한 것처럼 항상 숨이 찼다.
교문을 나가는 켄마를 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업을 빠진다 해도 켄마는 성적에 지장이 없었기 때문도 있지만 큰 이유는 아니었다. 켄마가 우성알파기 때문이었다. 페로몬을 맡을 수 없는 사람들도 우성알파가 내뿜는 페로몬에는 헛구역질 같은 반응을 했기 때문에 켄마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우성알파를 제압하는 방법은 더 강한 우성알파를 데려오는 방법뿐이었고, 학교는 켄마를 교실에 묶어두기보다는 우성알파에 대한 학교의 재량이라며 켄마가 나가는 것을 방조했다.
“잠깐, 오메가 병실은 막 들어가시면 안돼요.”
“아냐, 네가 여기 온지 얼마 안 돼서 모르는데, 저 사람은 안전해.”
켄마가 쿠로오의 병실 문을 열려고 하자 어느 간호사가 제지했다. 하지만 켄마가 말을 할 틈도 없이 다른 간호사가 그 간호사를 끌고 갔다. 귀찮은 일이 줄었으니 편한 일이었다. 켄마는 눈을 깜빡이며 병실 문을 열었다. 사과 냄새가 났다.
켄마의 시선 끝에 쿠로오가 누워있는 침대가 걸렸다. 쿠로오는 오늘도 잠을 자고 있었다. 작년부터 깨지 않을 뿐이다. 켄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쿠로, 일어나.”
켄마의 말에도 쿠로오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켄마가 잠을 자고, 쿠로오가 켄마를 깨우러 왔던 때와는 반대였다. 몇 년 동안 쿠로오가 매일 깨우러 왔을 때, 빠릿빠릿하게 일어나지 않아 쿠로오가 그것에 대한 앙갚음을 하려는 것이라고 켄마는 생각했다. 쿠로오는 앙갚음을 하기 보다는 토스를 더 올려달라고 할 사람이었지만, 켄마는 앙갚음이라고 여겼다. 쿠로는 이제 일어날 거니까. 금방 일어나서 배구를 하자고 할 거니까.
쿠로오의 앙갚음이라는 켄마의 생각은 꼬리를 물고 후회로 변했다. 왜 하필이면 그 날 쿠로오의 공부를 봐준다고 했을까. 아니, 왜 고등학교에 간 다음에 쿠로오를 자주 만나러 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쿠로오가 켄마에게 준다며 애플파이를 사러 거리로 나갔을 일도 없었을 텐데. 안 나갔다면 트럭에 치이지도 않았을 텐데. 그러면 여기에 계속 누워있지 않을 텐데. 도움이 되지 않을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지만, 켄마는 생각을 자를 수 없었다. 생각은 무거운 겁기도 했지만, 그 생각의 군데군데 움직이는 쿠로오가 있어서 잊을 수도 어딘가에 담아두고 나중에 볼 수도 없었다. 활짝 웃던 쿠로오, 배구가 좋다는 쿠로오, 고등학교에 가서도 배구가 하고 싶다고 울던 쿠로오.
“쿠로, 지금 안 일어나면 이제 토스 안 올려 줄 거야.”
벌써 몇 십 번째 쿠로오에게 부리는 투정이지만, 쿠로오는 눈꺼풀도 움찔거리지 않았다. 오메가로 판정이 난 후에 배구를 할 수 없다고 울었던 것은 다 잊었다는 듯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켄마는 그날 울다가 웃던, 쿠로오의 얼굴을 기억했다. 내가 있을 거니까, 배구 할 수 있어. 내가 먼저 가서 쿠로가 배구 할 수 있게 만들게. 그 말을 들은 쿠로오는 못생겨졌었다. 못생겼다고 놀리자 눈물을 닦고 웃었었다. 못생기고, 못생겨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던 얼굴. 지금은 쿠로오가 그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 꿈인 것처럼 고요했다.
쿠로가 일어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시는 혼자 있다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옆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쿠로가 해준 것 이상으로 더 아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켄마는 소리 내어 말도 못하고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게임에서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듯한 말투를 썼다며 자조했다. 쿠로는 살아있는데, 금방 일어날 건데. 그러니까 내가 쿠로가 못 일어난다고 단정 짓는 말을 쓰면 안 되는 건데.
“…켄마.”
들린 소리에 놀란 켄마는 손을 치우고 고개를 들었다. 쿠로오가 눈을 뜨고 있었다.
쿠로오가 눈을 떴다. 그 사실에 놀란 켄마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며 쿠로오를 봤다. 쿠로오가 뭔가 불편하다는 듯 뒤척거리자 켄마는 쿠로오의 움직임을 제지하며 너스콜을 눌렀다.
세상에, 쿠로오 환자가 눈을 떴어요! 조용하던 병실이 시끄러워졌다. 지정한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는 것 같았지만, 켄마는 그 소음을 받아들였다. 이 소음이, 지금 이 순간이, 쿠로오가 깨어난 것이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켄마, 울어?”
쿠로오의 말에 켄마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켄마는 팔을 들어 거칠게 눈물을 훔쳤다. 눈가에 닿는 교복의 까끌거림이 현실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쿠로오가 일어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켄마는 한마디도 못했다. 깨어나서 다행이야, 왜 지금 일어났어,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쿠로가 늦게 일어나서 이제 세터 안 할 거야, 넌 이제 고등학생이야, 네 중학교 졸업장은 내가 받았어, 등등. 켄마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눈물을 삼켰다.
“조금, 피곤하네. 조금만 더 잘게, 켄마.”
쿠로오의 말에 켄마가 간신히 대답했다. 응,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 조금만,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
쿠로오는 첫 날 말을 한 것이 기적이었다는 듯 며칠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쿠로오의 가족과 켄마의 가족은 모두 기뻐했다. 식물인간이 되어 있던 쿠로오가 깨어난 것이었으니까. 병원에서 특별 관리를 해준 덕에 쿠로오의 관절은 굳은 곳이 없었고, 근육만 붙으면 이제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었다.
켄마가 며칠째 오전부터 병실에 찾아오자, 쿠로오는 계속 켄마를 바라보았다. 왜 교복을 입고 왔으면서도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눈초리였다. 켄마는 쿠로오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게임기로 시선을 돌렸다. 소리를 끄고 하는 게임이라 켄마가 두드리는 소리만 병실에 울렸다. 쿠로오는 자신의 부모님과 이웃집 코즈메 씨가 왔을 때 켄마가 학교에 가야 하지 않느냐는 눈짓을 했지만 다 무시당했다. 방학인가-라는 생각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웠다. 방학이라면 조금 더 편한 복장으로 병실에 왔을 것이다. 궁금증을 풀어낼 방법은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그러려면 쿠로오가 체력을 먼저 키워야 했다. 그래서 쿠로오는 일주일 간 자주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눈을 떴다. 그 사실에 쿠로오의 병실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모두 안도했다.
“켄마, 학교는?”
쿠로오는 자기 몸을 좀 가눌 수 있게 되자마자 켄마에게 학교를 물었다. 만약에 멋대로 안 가는 거면 다른 사람들 눈에 단단히 찍힐 걸. 쿠로오의 말에 켄마는 상관없어-라고 답했다. 재잘거리며 잔소리를 할 것 같던 쿠로오의 입이 닫혔다. 신이시여, 제 눈앞에 있는 켄마가 제가 아는 켄마가 맞습니까?
물론 신에게서 답신은 오지 않았다. 신한테 메일을 보낼 때 주소를 첨부했어야 했는데. 그 질문이 쿠로오에게 반송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도록. 신이 도움을 주지 않자 쿠로오는 이것저것 물었다. 켄마는 쿠로오를 바라보다가 몇몇은 말했고, 몇몇은 침묵하고, 나머지는 환자는 나중에 알아도 된다며 회피했다.
“켄마, 학생은 학교에 가는 거야.”
“나중에 가도 돼.”
“어라? 학교는 안 가면서 애플파이는 먹으러 다녀? 네가 문을 열면 애플파이 냄새가 나.”
“쿠로?”
켄마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 쿠로오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은 없는데.”
“왜? 애플파이 냄새랑 열이 무슨 관계야?”
“쿠로, 나는 누구야?”
“질문이냐. 코즈메 켄마, 네코마 고등학교 2학년. 배구부 세터.”
“그러면 너는?”
“쿠로오 테츠로. 네코마 고등학교 3학년. 배구부 주장.”
신종 장난이야? 쿠로오는 가볍게 웃으며 답을 했지만 그 말을 들은 켄마는 눈을 크게 떴다. 켄마의 이성과 직감이 한 팀을 먹고 켄마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켄마는 가지고 있는 믿음을 끌어안으며 떠오른 것을 부정했다.
“쿠로, 장난은 그만 둬.”
“친절한 쿠로오 씨는 장난을 치지 않습니다만?”
켄마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랬다. 제 앞에서 쿠로오는 장난을 친 적이 없었다. 거짓말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러니 쿠로오가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일 것이었다. 이성과 감각이 말하는 게 맞았다. 믿음을 끌어안고 뒤돌아있어도 다가오는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코즈메 켄마의 앞에 있는 쿠로오는 자신이 알던 쿠로오가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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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오 테츠로, 네코마 고등학교 3학년, 배구부 주장. 봄 대회 전국시합을 위해 열심히 연습하는 평범한 배구하는 고교생. 그것이 쿠로오 테츠로를 수식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눈을 뜨니 자신은 병원에 누워있었다. 병원 사람들은 모두 기적이라며 축하한다고 쿠로오에게 말했고, 가족은 병실에 다가와 울었으며, 켄마도 병문안을 왔다. 조금 이상했지만 넘길 수 있는 것들이었다. 훈련을 하다가 과로를 해서 입원했을 수도 있지. 물론 무리를 한 기억은 없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봐서는 과로가 분명해 보였다. 그랬다. 켄마가 학교도 가지 않고 매일 병실에 오는 것도 걱정을 많이 해서, 놀라서 그런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가벼운 대화 사이에서 켄마가 울었다. 그렇기에 쿠로오는 지금까지 느끼던 이상함을 다시 인지해야 했다. 켄마는 병실에 자주 오는데 네코마 배구부원은 한 명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 친절한 카이나, 2년 동안 친해진 야쿠라면 올 법도 했는데 오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켄마, 궁금한 게 많은데 물어봐도 돼?”
“해.”
“왜 울었어?”
켄마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입을 닫았다. 쿠로오는 그것을 보면서 켄마가 정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믿기지 않는 일이 있어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말해주기 위해 말을 고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켄마는 자신을 속이려고 우는 것까지 할 정도로 장난에 열중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아는 쿠로는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돼. 작년에 트럭에 치여서 계속 병원에 입원해 있었어. 그래서 기적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아는 '쿠로'가 아니라서 미안해, 켄마.”
켄마의 울음이 다시 터지고, 애플파이 향도 강해졌다. 쿠로오는 우는 켄마를 달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토닥여줬다. 일 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알던 사람이 아닐 경우는 얼마나 될까. 삼류소설의 내용으로도 진부하다며 쓰일 리 없는 일이 왜 일어난 걸까. 다른 세계의 몸으로 들어왔는데 주변인이 바뀌지 않을 경우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이 세계의 ‘쿠로오’를 기다리던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쿠로오는 꼬리를 무는 의문이 머리를 가득 채우는 것을 느꼈다. 무엇하나 답을 내릴 수 없는 이야기였다. 소설이라면 대개 전지전능한 가이드가 있고, 무엇을 하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준다는 조건이 붙을 텐데. 하지만 이것은 소설도 아니었고, 옆에 있는 켄마는 가이드가 아니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지도 않았다. 그저 울고 있을 뿐이었다.
“미안해.”
지금 쿠로오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사실이라서 더욱 잔인한 말이었다.
“이곳에 있는 '쿠로오'의 가족들에게도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말해야 되는 거겠지.”
“내가 말할게. 그러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내 쪽 켄마한테도 약한 편이라서. 쿠로오가 얕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쿠로 안에 있는 동안, 재활치료를 받으면 좋겠어. 나중에 네가 돌아가고 쿠로가 돌아와서 바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할 수 있다면, 학교에도 가고 배구부 가입도 했으면 좋겠어. 나와 학년 차이가 나면 쿠로가 돌아와도 배구부 가입이 힘들어질 거고…. 여기 쿠로는 고등학교에서도 배구하고 싶어 했거든.”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쿠로오의 물음에 켄마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내가 살고 있는 곳부터 설명할게. 켄마는 그렇게 말했다.
“이곳은 알파와 오메가와 베타가 있는 세계야. 베타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특이한 사람이지만, 알파와 오메가는 성별에 관계없이 알파와 오메가기만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어.”
“내가 살던 곳은 베타라는 사람들로만 있는 세계야.”
“알파와 오메가는 베타보다 신체적 능력이 조금 더 좋은 편이야. 어릴 때 병에 덜 걸린다거나 하는 것들.”
“그러면 알파와 오메가가 많겠네?”
“응. 알파가 40%, 오메가가 30%, 베타가 30%. 그리고 알파와 오메가는 페로몬을 써.”
“페로몬? 개미들이 쓰는 거?”
“어느 정도 소통이 되니까 개미와 비슷할 수도 있겠네. 기분을 표현할 수 있거든.”
“특이하네.”
“문제는 알파 페로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오메가가 많다는 거야. 알파의 흥분한 페로몬을 맡으면 두통을 일으키고, 구토 증세를 보이는 오메가가 있어. 운동경기는 신체적 조건이 좋은 사람이 하게 되고, 운동을 하는 중에는 흥분할 가능성도 높아. 그리고 이곳의 쿠로는 오메가야.”
오메가가 약자가 된다는 건가. 쿠로오는 이곳의 ‘쿠로오’가 안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할 수 있었던 것을 못한다니.
“나라에서 알파에게 매달 한 달 치 이상의 페로몬 억제제를 주지만, 그걸 먹은 알파의 페로몬을 맡고 몸이 안 좋은 걸 호소하는 오메가도 있어. 그래서 오메가도 진정제를 복용하고 사회생활을 하거나, 오메가와 베타만 있는 곳에 들어가기도 해.”
“그러면 오메가가 있는 학교에 가서 배구를 하면 되잖아?”
“근처에 있는 오메가 고등학교에 배구부가 없더라고. 오메가는 운동선수로 나가는 케이스가 적어서 오메가로만 이루어진 팀은 그렇게 많지 않아. 그래서 대개 알파의 페로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오메가들이 일반 리그에서 뛰곤 해.”
“일반 리그에서 뛸 수 있다면 일반 고등학교에서도 할 수 있잖아.”
“감독이 오메가를 뽑는 걸 좋아하지 않아. 억제제를 많이 먹으면 부작용이 있는 알파도 있어서 팀 내 사기도 떨어지고, 연습시합을 할 팀을 구하는 것도 어려워서.”
“그러면 이곳의 쿠로는 어떻게 배구를 하려고 했어?”
“내가 페로몬 샤워를 시켜줘서 같이 하려고 했어. 일종의 바람막이 같은 거지. 내 페로몬은 쿠로에게 익숙하니까. ‘쿠로’, 애플파이 향이 났을 때 머리가 아팠어?”
아니. 쿠로오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애플파이 냄새가 익숙하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시합 중간 중간에 페로몬 샤워를 시켜줄 알파가 있으니 괜찮다고 입부할 생각이었어. 쿠로는 다른 알파의 페로몬을 맡으면 머리가 아파서 고등학생까지만 배구를 하고 싶다하기도 했고.”
“그러면 이곳의 쿠로가 오메가가 된 뒤로 계속 같이 배구를 한 거야?”
“오메가로 발현되기 전에도 했어. 쿠로가 하고 싶대서.”
“나도 내 쪽 켄마에게 내가 하고 싶다며 같이 배구하자고 그랬는데.”
“그쪽이나 이쪽이나 많이 닮았네. 배구를 하게 된 계기도 그렇고, 알던 사람이 아닌데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도 그렇고.”
너도 친절해. 쿠로오의 말에 켄마는 자신이 부탁하는 입장이라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일 다시 올게. 이쪽의 사람들에게는 다 말해둘 테니까, 배구부 이야기는 생각해줘.”
“받아들이는 게 어려울 텐데. 왜 내가 여기서 깨어난 걸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생각 잘 부탁해, 쿠로.”
병실을 나가는 켄마를 보면서 쿠로오는 침대에 몸을 눕혔다.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다른 세상의 정보를 받아들여서 머리가 뒤죽박죽이었다. 쿠로오는 자고 일어나면 원래 세상에 있기를 바라며 눈을 감았다. 너무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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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몬 조절?”
“그게 이 세계의 매너야.”
“어떻게 하는데?”
“정리 좀 할게. 기다려, 쿠로.”
쿠로오는 이 세계에 잠시 동안 적응하고 살기로 했다. 어떻게 온 것인지 모르기에, 어떻게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 원래 세계에 있을지도 모르고. 쿠로오가 켄마에게 이곳에 있는 동안 잘 부탁한다고 했더니, 켄마는 고마워하면서 자기가 도울 수 있는 건 다 하겠다고 했다. 이 세계에 있는 쿠로오의 부모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쿠로오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말했다. 어떻게 대하면 편하겠냐는 이 세계 부모님의 물음에, 쿠로오는 이 세계의 쿠로오처럼 대해달라고 했다. 어차피 손님처럼 있다가 말도 없이 바뀔 수 있어요. 그리고 저한테 맞추시면, 쿠로오가 돌아온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고요.
그래도 불편한 게 있으면 말하고, 네 집처럼 편하게 있으렴. 우리도 너를 아들처럼 대할게. 그 말에 쿠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거부하는 것도 실례인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쿠로오는 거동이 가능해질 무렵 퇴원해서 집으로 왔다. 방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쓸 법한 것들이 많았다. 쿠로오는 자신이 고등학교 1학년 때 뭘 했었나 생각을 해봤지만, 배구부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배구부 가입하고 나서 야쿠와 매일 대립하고, 카이가 그것을 지켜보는 일상이었는데.
“아주 편안하게 있는 게 아니고, 밖에 나갈 때처럼 조금 긴장을 하는 느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막을 빈틈없이 치는 느낌?”
“왜 다 느낌인데.”
“페로몬은 보이지 않으니까 설명하기가 힘들어.”
켄마는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지 정말 모르겠다는 투였다.
“켄마, 그러면 너는 어떻게 제어하는데?”
“처음에 조금 신경을 썼더니, 나중에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됐어.”
“전혀 감도 안 잡히는데. 이거 배우다가 바뀌는 게 빠르겠어.”
침대 위에 앉아있던 쿠로오가 몸을 뒤로 눕혔다. 보이지도 않는 걸 어떻게 자제를 해. 그리고 거기에 신경을 쓰면서 어떻게 배구를 하고.
켄마가 쿠로오에게 다가와 손목을 내밀었다.
“맡아봐.”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이게 페로몬을 밖으로 안 새어나가게 조절한 거야. 그리고 지금은….”
“오, 애플파이 냄새 난다.”
“조금 열었어.”
“역시 잘 모르겠어.”
켄마도 설명할 방법을 못 찾겠다는 듯 쿠로오 옆에 같이 누웠다. 상체는 침대 위에 나란히 있고, 다리는 침대 밖으로 나가 바닥에 닿아있는 이상하게 누운 자세였다.
“켄마, 내 페로몬은 무슨 냄새야?”
“사과향일 걸.”
“일 걸? 일 걸은 뭐야!”
“네 페로몬은 평소에도 옅어서 맡아본 적 거의 없어.”
“그러면 조절이 되고 있는 것 아니야? 숨 쉬는 것처럼.”
켄마는 턱에 손을 대고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원래 자연스럽게 하는 거니까.
“켄마, 그런데 왜 페로몬 조절이 매너야?”
“마음에 안 들 때 막 뿜어버리는 사람이 있거든. 그러면 주변에 민폐니까.”
“그러네. 옆에 갔다가 구토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 그러면 페로몬 조절을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
“알파가 페로몬 조절을 못하면, 강한 페로몬을 내는 알파나 오메가가 페로몬을 내서 제압해. 오메가가 못하면 피곤해서 그런 거니까 다들 집으로 가라고 해.”
“둘 다 못하는 건데 차이가 있잖아?”
“알파 페로몬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만, 오메가 페로몬은 거의 안 그러니까. 그러니 좀 실수해도 괜찮을 거야, 쿠로. 오메가 페로몬은 기분을 좋게 하는 냄새가 많대.”
그러면 페로몬 조절 몰라도 상관없는 거 아니야? 쿠로오의 툴툴거림에 켄마가 페로몬 기초 지식은 알려줘야 하니까-라고 답했다.
“알파는 페로몬을 이용해서 오메가의 정신을 잃게 하고 강간을 할 수도 있으니까 알파를 더 강하게 통제하는 거야.”
“조심해야겠네.”
“응. 사고가 나면 알파가 벌은 받지만, 오메가는 신체적 폭력을 당한 뒤니까.”
나는 쿠로가 다치지 않으면 좋겠어. 켄마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쿠로오의 뺨에 가져다 대었다. 쿠로오는 그런 켄마를 보더니 손을 들어 켄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말은 아껴두었다가 네 쿠로한테 해줘. 두근두근할지도 몰라.”
“쿠로는 안 그래?”
“내 세계의 켄마는 같은 성별이라 연애상대로 본 적도 없어서. 하지만 여기는 아니잖아?”
쿠로오가 마주본 상태로 씩 웃었다. 켄마는 그런 쿠로오를 보더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켄마가 고개를 흔들자,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 보이는 귀가 붉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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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게 운동을 해도 괜찮다는 진단을 받은 다음 날, 쿠로오는 켄마와 등교길에 나섰다. 켄마는 자신이 배구부에 말을 해둘 테니 내일 가자고 했지만, 쿠로오는 출석일수를 가져다 대며 말했다. 유급하면 시험을 잘 봐도 2학년이 못되고 배구도 못해. 켄마는 아직 간당간당하지 않다고 했지만 쿠로오는 이 세계의 쿠로오가 돌아왔을 경우 며칠 몸조리를 하다가 간당간당해지면 얼마나 힘들겠냐며 받아쳤다.
그리고 지금 쿠로오는 네코마 고등학교 정문 앞에 서 있었다. 등교하는 거리도, 네코마 고등학교도 모두 쿠로오의 기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곳이었다. 페로몬 향도 그렇게 진하지도 않아서 그냥 학생이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것 같았다. 향수도 혈액 흐름이 빨라지면 더 많이, 멀리 퍼지니까 페로몬은 향수와 다를 것도 없었다. 향수는 시간이 지나면 날아가지만 페로몬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나온다는 정도만 다를까. 쿠로오는 그렇게 눈을 깜빡이며 정문 앞에 서 있다가 1학년 때 자신이 몇 반 이었는지 생각했다. 이곳에서도 똑같이 2반 일까.
“쿠로, 가자.”
“어디로?”
“교무실.”
켄마는 앞장서서 교무실로 가기 시작했다. 쿠로오가 혼자 갈 수 있다고 했지만 켄마는 같이 가는 게 좋다며 고집을 부렸다. 오늘 1교시 수업 듣기 싫단 말이야. 켄마가 툴툴거리며 한 말에 쿠로오는 켄마의 손을 잡으며 그러면 1교시만 지나고 가-라며 웃었다.
교무실 밖 복도에서 쿠로오와 켄마는 담당이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 쿠로, 익숙해? 응, 내가 있던 곳과 비슷해. 그래도 너무 익숙하게 다니지 마, 쿠로는 오늘 공식적으로 처음 학교에 온 거니까. 켄마의 말에 쿠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모르는 척 할게. 쿠로오는 그 말을 하다가 덧붙였다. 어차피 교무실에도 같이 갈 정도로 친한 사이인데, 켄마 너한테 들었다고 하는 건 어떨까. 켄마는 잠시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학교 탐방도 나랑 다녀야겠네. 대개 반장이 도와주지 않아? 하지만 쿠로한테는 내가 있는 걸. 켄마는 당연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쿠로오는 켄마가 고양이의 눈키스를 하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켄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쿠로?”
“아, 미안. 기분 나빴지?”
“별로.”
교직원 회의가 끝났는지 교무실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나서 쿠로오와 켄마는 고개를 돌렸다. 갈까? 잠시만. 켄마는 쿠로오를 멈춰 세웠다. 쿠로 눈 감아봐. 교문 들어서기 전에 했잖아? 혹시 모르니까. 켄마의 불안이 눈에 보이자 쿠로오는 얌전히 눈을 감고 기다렸다. 이마에 켄마의 입술이 닿는 느낌이 났다. 이마에 키스를 하는 것으로 페로몬 샤워를 한다니. 조금 낯부끄러운 일이었지만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고, 쿠로오는 이 세계에 조금 익숙해지기로 했다. 익숙한 애플파이 향이 쿠로오의 몸을 감쌌다.
이곳의 켄마는 쿠로오보다 조금 더 커서 켄마가 살짝 발뒤꿈치를 들면 쿠로오의 이마에 입술을 닿게 할 수 있었다. 알파가 신체능력이 좋다더니, 성장 상태도 좋은 것 같았다. 아니면 이곳의 켄마는 편식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켄마에게 조금 신경을 더 써서 밥을 잘 먹였더라면 내 세계의 켄마도 이 세계의 켄마처럼 컸을까? 쿠로오는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어 켄마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켄마가 살짝 웃었다. 켄마가 이렇게 감정 표현에 솔직했던가? 쿠로오는 추억을 더듬어 찾아보려고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다른 세계니까 감정 표현하는 게 좀 다를 수도 있지.
교무실에서 한 상담은 별 게 없었다. 교칙과 주의사항 같은 것으로 평범했다. 반은 2반, 담임도 쿠로오의 기억과 같았다. 담임은 쿠로오에게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양호실로 가거나 조퇴를 하라고 말했다. 당연했다. 일 년 동안 입원한 학생이 자기 반에 들어오면 걱정이 되겠지.
“점심시간에 봐, 켄마.”
“응.”
켄마는 아쉬운 듯 발걸음을 돌려 2학년 교실로 갔다. 켄마는 쿠로오와 학교 투어를 같이 하고 싶어 했지만, 쿠로오가 1교시 끝날 시간이 되었다면서 켄마에게 교실로 가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켄마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지, 쿠로오를 보면서 ‘쿠로, 혹시 수업 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 해. 바로 네 교실로 갈게.’라는 말까지 하고서야 멀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쿠로오는 켄마가 과보호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이 켄마를 생각하는 것처럼, 이곳의 켄마는 쿠로오를 아끼는 것이 아닐까. 형이 동생을 아끼듯이. 쿠로오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담임 선생님을 따라 복도를 걸었다. 고3의 기억을 가진 건장한 남자가 학교에서 험한 일을 당할 일은 없다고 당연하게 생각하고서.
점심시간에 오겠다고 대답하던 켄마는 쉬는 시간마다 쿠로오의 교실로 찾아왔다. 점심시간에 보면 되지 않느냐는 쿠로오의 말에 켄마는 자기가 오고 싶어서 그렇다며 쿠로오의 자리 옆에 섰다. 2학년이 1학년 교실에 들락거리자, 눈치를 보게 된 것은 쿠로오 옆의 학생들이었다. 그걸 알아차린 쿠로오는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마다 켄마의 손을 잡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같은 반 학생들이 눈에 띄게 안심하는 것 같아서 아예 복도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그러다가 무리해서 쓰러지면 어떻게 해, 쿠로.”
“쿠로오 씨는 의사 선생님한테 운동을 해도 된다고 들었습니다만?”
“배구라고 말 안했지?”
쿠로오는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못 들었다는 듯 휘파람을 불며 켄마의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원래 있던 곳에서도 체력이 아주 좋지는 않아서, 후위에 있을 때는 야쿠와 바꿨다는 말은 이곳 켄마에게 하지 않았으니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걸 지금 밝혀서 괜히 배구부 구경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보다는 말하지 않는 게 나았다. 일단 입부라도 해야 견학이라도 하지 않겠어.
켄마는 딴청 하는 쿠로오를 보더니 고개를 조금 숙였다. 쿠로오가 살던 곳의 켄마라면 손에 게임기를 두고 놓지 못할 텐데, 이곳의 켄마는 병원에 있을 때 빼고 게임기를 손에 쥐지 않는 것을 보니 자신을 더 살피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두 켄마 모두 신경의 절반 이상을 쿠로오에게 쓰는 건 똑같지만.
켄마의 기가 죽은 것 같아서 쿠로오는 켄마의 어깨를 두드렸다.
“상태가 안 좋으면 말할게. 걱정하지 마, 켄마.”
“응. 쿠로, 교실에서 누가 알파라고 나대면 수업중이라도 전화해. 바로 달려올게.”
“남들 시선에 걸리는 거, 싫어하지 않았어?”
“싫어. 하지만 쿠로가 힘든 건 더 싫어.”
퇴원한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부탁한다고 자기소개 할 때도 이야기했고,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러니까 신경 많이 안 써도 돼, 켄마. 쿠로오는 그렇게 켄마를 다독였다. 그리고 한 학년 높은 선배가 매 쉬는 시간마다 찾는데 누가 날 건드리겠어? 쿠로오의 말에 켄마는 조금 기분이 나아졌는지 쿠로오와 시선을 맞췄다. 자기 세계 켄마보다 귀여워보여서 꼭 안을 뻔 했으나, 이곳 켄마는 한 학년 위라는 걸 기억하고 있기에 참았다. 몸으로 끌어안는 안정 대신에, 쿠로오는 말로 안심시키기로 했다.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이 세계 쿠로오의 몸은 아껴서 쓸게.”
“응? 어차피-. 아니, 그러네. 1학년 때 써봤으니 자신의 한계를 잘 알겠네.”
켄마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을 고쳤다. 쿠로오는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켄마가 대화의 방향을 돌리자 켄마의 말에 집중했다.
“수업 끝나고 교실에 꼭 있어. 내가 배구부 가서 감독에게 허락을 받고, 억제제를 안 먹은 알파에게 억제제를 먹으라고 이야기하고 올게.”
“나라에서 먹으라고 하는 건데, 억제제는 평소에도 먹지 않을까?”
“체육 수업이 없으면 안 먹는 알파도 가끔 있어. 그리고 연한 페로몬에 천천히 익숙해지는 게 나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쿠로네 교실로 올 때까지 어디 가지 마. 켄마는 몇 번이고 쿠로오에게 다짐을 받고 나서야 자신의 교실 방향으로 돌아갔다. 쿠로오도 켄마가 가는 것을 보더니 자신의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1학년 수업은 이미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이곳의 쿠로오가 올 때에 노트 정리가 없다면 힘들 테니까 노트를 열심히 정리해 놔야겠지. 쿠로오는 형형색색의 볼펜을 사용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방과 후. 쿠로오는 얌전히 가방을 싸고 켄마를 기다렸다. 평소에 다른 것들을 다 귀찮아해서 그렇지, 할 때는 하는 켄마니까 대충하고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고. 쿠로오는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교실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몸은 교실에 있으니 교실 안에 있었다고 켄마에게 우길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쿠로오는 익숙한 머리통을 발견했다. 3반에서 나오는 그 사람은 매우 익숙했다. 2m크기의 키에 은발을 가지고, 녹색 눈을 가진 사람. 자신이 배구부로 영입했던 하이바 리에프. 1학년 교실에서 나오는 걸 보니 같은 학년인 것 같았다. 리에프는 이곳에서도 배구를 할까? 배구를 한다면 누가 입부하라고 했을까? 누가 리에프를 가르칠까? 쿠로오는 떠오르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리에프!”
쿠로오는 녹색 시선과 마주쳤다. 그리고 숲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열대우림 쪽 숲이 아니라 많이 더 차가운 곳의, 타이가 지방의 느낌. 아침에 산에 올라가면 맡을 수 있는 날이 서 있는 차가운 공기.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아여? 나는 처음 보는데.”
“이국적인 외모라서? 왠지 사자 같아 보여서 일단 말이 나왔어.”
“이름 러시아 말인데, 러시아인처럼 보여여?”
“응, 이국적으로 생겼잖아. 아, 나는 쿠로오 테츠로.”
1학년 때 말을 걸었던 리에프와 다르지 않다고 쿠로오는 느꼈다. 일단 안면은 텄으니 배구 하냐고 물어볼까? 아니면 며칠 친분을 더 쌓고 물어볼까. 며칠-까지 생각하던 쿠로오는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 쉬는 시간에는 켄마와 함께 할 것 같으니 리에프와 단시간에 가까워지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 처음 보지? 퇴원하고 오늘 학교 처음 왔거든. 잘 부탁해.”
“네? 네. 잘 부탁해여.”
리에프는 뭔가 이상한 것을 봤다는 듯, 눈을 껌뻑이다가 쿠로오가 내민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손의 흔들림이 덜해지자 쿠로오는 리에프에게 운동을 하냐고 물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리에프는 시계를 보더니, 가봐야 한다면서 다음에 보자는 말을 남기곤 복도를 질주했다. 리에프가 금방 복도의 끝에 도달하는 걸 보면서, 역시 리에프는 피지컬이 사기라고 생각했다. 역시 운동은 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도 배구를 하면 좋겠다. 이곳의 옆 반 친구는 야쿠가 아니라 리에프여도 재미있을 것 같았고.
리에프가 달려간 뒤로 복도를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구경할 게 줄어든 쿠로오는 얌전히 교실로 들어와 가방을 베고 엎드렸다. 수업이 끝나고 바로 체육관에 가지 않고 이렇게 앉아있는 게 얼마만인지. 쿠로오는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조금 자고 일어나면 켄마가 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쿠로, 일어나.”
자고 있던 쿠로오에게 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쿠로오가 눈을 비비면서 창문 너머 하늘을 보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 잔 것 같았다.
“쿠로, 춥지는 않아? 많이 피곤해? 집으로 가서 밥 먹을까?”
질문이 쏟아져 내리는 켄마의 눈을 보면서 쿠로오는 웃었다. 항상 챙겨주다가 챙김을 받는 입장에 서니 뭔가 이상하다. 나중에 해야지-하고 미뤄둔 일을 누군가가 다 해놓고 이거 어때?-라고 묻는 기분이 이럴까? 어릴 적부터 켄마를 챙겨서 놀러 다녔고, 학교에 들어가서 배구부를 하고 나서부터는 배구부원까지 챙기고, 다른 학교와 연습이 잡히면 다른 학교 후배까지 챙기던 일상. 그 일상이 꿈은 아닐까? 사실은 여기에 있는 켄마가 진짜 켄마고, 나는 병원에 있던 동안 다른 세계의 꿈을 꾸다 온 쿠로오고. 무슨 생각이람. 자다가 깨서 정신이 잠깐 어떻게 되었다고 쿠로오는 넘겼다.
“기다리는 동안 심심해서 엎드려 있다 보니 잠들었어.”
“응.”
가방까지 베고 작정하고 잤지만, 쿠로오는 뻔뻔하게 실수로 잠든 것처럼 말했다. 켄마는 그것을 알 텐데도 그냥 수긍했다. 이곳의 켄마도 상냥하다. 그래서 켄마가 원하는 것을 좀 더 이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배구부는?”
“감독님은 허락했어. 주장이 늦게 와서 설명 다시 하는 바람에 귀찮았어.”
“알파가 몇 명 있는데?”
“우성알파는 주장이랑 나. 그 외에는 베타나 일반, 열성 알파라 억제제 먹으면 티도 안 날거야.”
“그러면 주장과 친해져야 하려나. 네코마 주장은 어때?”
“귀찮아. 배구는 그럭저럭 하고, 스파이크도 나름 괜찮은데 가끔 흥분하면 페로몬 조절을 못해.”
거기에 우성알파라고 가끔 기싸움 걸어와서 짜증나. 켄마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거, 감독님이 켄마한테 리에프 맡으라고 할 때 짓던 표정인데. 쿠로오는 가방에 얼굴을 파묻고 배를 잡으며 웃었다. 여기 켄마는 감정표현이 풍부한 편이지만, 그래도 가끔 알던 켄마가 겹쳐 보일 때는 뭔가 익숙해져서 웃음이 났다.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집에 가자.”
“견학은?”
“환자는 휴식이 더 필요해. 견학은 내일 하자.”
“켄마, 네코마에 세터가 더 있어?”
“있겠지.”
주전은 나지만. 켄마는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슬쩍 돌리면서 말했다. 쿠로, 그것보다 안 가? 안 가면 말 안할 거야. 켄마의 말에 쿠로오는 가방을 등에 메고 켄마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연습 이렇게 안 나가면서도 주전이야? 어차피 공은 다 나한테 오고, 나는 그 공을 받아 이길 수 있도록 연결하는 거니까. 그러면 켄마한테 공받기는 무리인가. 아냐, 쿠로가 원하면 하루에 백 개라도 올릴게.
켄마의 말에 쿠로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약속이다? 켄마, 지금 약속 한 거다? 피곤하다고 그런 말 한 적 없다 말하는 거 아니지? 쿠로오의 짓궂은 말에 켄마는 무리 안하는 선에서 할게-라고 대답했다. 쿠로오는 이곳의 쿠로오가 켄마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아, 켄마. 배구부에서는 형이라고 부를까?”
“쿠로가 편한 대로 불러. 어차피 호칭에 신경 쓰는 편도 아니고.”
“그래도 1학년이 얕볼 수 있으니까?”
“우성알파라 괜찮아. 그리고, 주장만 없으면 훨씬 더 편안한 연습을 할 텐데. 쿠로, 내년엔 주장이 은퇴하니까 더 재미있게 배구할 수 있을 거야.”
켄마는 정말 네코마 주장을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뭐, 내일 가보면 알겠지. 쿠로오는 그렇게 생각하며 켄마의 옆에서 걸었다.
쿠로오와 켄마가 걸어간 발자국에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
#
다음날, 켄마는 어제처럼 쿠로오의 교실로 찾아왔다. 쿠로오는 켄마와 복도를 다니며 3반 교실을 조금씩 들여다보았지만 리에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은색의 머리통에 그 정도 키면 못 보는 게 더 이상한데. 쿠로오는 조금 더 찾아보려고 했지만 켄마의 눈빛이 쿠로오를 겨냥하는 듯 세밀하게 보고 있어서 포기했다. 이름을 부르면 다른 반에 신경도 쓰지 않고 켄마를 따라 갈 텐데, 켄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름도 부르지 않고, 다가오지도 않고, 툭 쳐서 생각에 빠진 쿠로오를 건져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마치 사람이 무해하다는 것을 알리려고 고양이 앞에서 하품을 하는 것처럼.
무해하다? 쿠로오는 생각의 파도에서 한 단어를 건져냈다. 왜 켄마가 무해하다고 생각했을까? 켄마는 켄마인데. 이곳의 쿠로오를 생각하는 켄마인데. 왜 그렇게 느꼈지?
“켄마.”
“응, 쿠로.”
“왜 너는-, 아니야.”
왜 나는 너를 무해하다고 느꼈을까? 쿠로오가 목구멍 안으로 삼키기 전에 나온 말은 조각이 나서 밖으로 나왔다. 아니라는 말로 둘러대었지만 켄마라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뭐라고 해야 하지? 네가 무해하다는 건 알고 있는데 문득 네가 무해한 척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어? 아니면 너는 나한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듯 나를 안심시키는 행동을 해?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이상했어? 무슨 말을 해도 이상했다. 쿠로오는 손을 머리에 넣어 헤집었다.
켄마는 그런 쿠로오를 보더니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왜 쿠로네 교실에 계속 오냐고?”
“응? 응.”
“어제 쿠로한테 페로몬을 흘린 알파새-, 아니 알파를 찾으려고.”
“페로몬? 이마 키스는 너한테만 받았는데.”
“내가 덮어둔 페로몬 위에 흘려서 쿠로는 모를 수도 있어. 하지만 페로몬 샤워를 했는데도 흘렸다는 건 쿠로를 찔러볼 생각이 있다는 거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려고 그랬지.”
“다른 페로몬이 묻으면 무슨 일이 생겨?”
“이렇게 페로몬을 묻히는 놈들 중에는 자신이 포식자라고 생각하고 약한 알파나 오메가, 베타를 노리는 것들이 많아서.”
짐승보다도 못한 것들이니까 500m밖에서라도 보이면 전화해. 진지하게 말하는 켄마를 보고 쿠로오는 숨을 삼켰다. 그 정도면 학교가 다 범위에 포함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쿠로오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처신을 잘못했다가 이 몸의 원주인이 다치면 안 되니까.
“자주 맡은 페로몬이라 그 새끼의 1촌 관계나 친척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켄마, 그 새끼가 누군데?”
“배구부 주장. 혈연관계까지 우성알파라니 짜증나.”
쿠로오는 투덜거리는 켄마의 등을 살살 쓸며 달랬다. 조심할게, 전화도 할게, 그러니까 심각하게 화내지 마.
쿠로, 네 안전에 관련된 일이니까 조금 더 주의 깊게 생각해줘. 아니야, 내가 할 테니까 쿠로는 가만히 있어도 돼. 켄마의 말에 쿠로오는 눈을 깜빡였다. 왠지 과보호 받는 기분. 그래서 자신의 세계에 있는 켄마를 더 챙기려고 하면 거리를 두면서 피하려고 했나? 돌아가면 켄마를 적당히 놀려야지- 쿠로오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보다 지금 궁금한 점이 있었다.
“켄마, 우성은 드문 편이야?”
“음. 알파를 크게 우성, 일반, 열성이라고 보면 우성은 20퍼센트 정도야. 성인이 되면 우성 사이에서는 극우성과 우성, 일반에 가까운 우성으로 나눠진다고 해. 급을 더 나누는 것 같아서 내 입장에서는 별로야. 특권의식을 주는 것 같잖아.”
“확실히. 네 입장에서는 귀찮겠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어.”
“뭔데?”
“쿠로랑 배구할 수 있는 것. 우성이니까 페로몬 샤워를 하면 여간해서는 다른 페로몬에 노출이 되지 않으니까.”
말을 끝내고 웃는 켄마가 정말 기뻐보여서, 쿠로오는 입을 달싹였다가 좋은 점이네-라는 말을 하고 끝을 맺었다. 켄마가 웃는 모습에 이 세계의 쿠로오가 조금 부러워져서 잠시 입이 무거워졌다고, 쿠로오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방과 후. 쿠로오는 켄마를 따라 드디어 배구부가 있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도 같았고, 켄마의 설명을 들어보면 쓰는 체육관도 쿠로오가 있던 배구부가 쓰던 곳과 같았다. 이렇게까지 똑같을 수 있나? 쿠로오는 이상함을 느꼈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둔 것 같은 느낌.
“쿠로?”
“응?”
“아니 멈춰 있기에.”
“아, 저기.”
쿠로오는 임기응변으로 체육관을 가리켰다. 지금 깨달으면 뭔가 이상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뭔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싶었다. 쿠로오는 자신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여학생 팀이 운동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알파와 오메가가 있는데도 여성팀이 있는 게 신기해서. 운동은 성별로 나누나 봐?”
“베타가 아니라서 성별은 신경 쓰지 않아. 음, 여기는 선천적으로 가진 근육량과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근육량을 조합해서 팀을 나눠. 체급이 비슷해야 페어플레이를 할 수 있으니까. 대개 후천적으로 근육을 만들기 힘든 사람이 A팀이고, 후천적으로 근육량을 쉽게 늘릴 수 있는 사람이 B팀이야. 우린 배구부 B팀.”
“켄마 너는-.”
“후천적으로 근육을 만들기 쉬운 편인 건 맞으니까. 다만 그렇게까지 운동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적당히 근육 있고 마른 알파가 섹시하게 보인다고 하니까. 켄마는 그 말을 덧붙이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쿠로오의 눈에 켄마의 붉어진 귀가 보였다. 분명 얼굴도 빨갛게 되었을 것이다. 쿠로오는 아직도 귀가 붉은 켄마를 보다가 말을 건넸다.
“그래, 네 쿠로도 널 섹시하다고 생각할 거야.”
“쿠로는?”
“나?”
“응.”
나도-. 나도? 쿠로오는 잠깐 생각을 하려다가 켄마가 시선을 맞추는 걸 보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섹시하다고 생각해. 켄마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 것을 본 쿠로오는 자신이 옳은 대답을 했다고 느꼈다. 잘 모르겠으면 이쪽 쿠로오에게 맞추면 되겠지. 쿠로오는 안일하게 생각하며 켄마를 따라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켄마는 체육관 안을 먼저 확인하고 오겠다며 쿠로오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쿠로오는 괜찮다고 했지만 켄마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왠지 억제제를 안 먹은 사람이 있을 것 같다며 쿠로오 이마에 키스를 하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쿠로오는 켄마가 의도적으로 소리를 줄인 부분에 ‘주장새끼’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켄마 주장이랑 정말 사이 안 좋네. 그러고도 주전 세터로 뛰다니 조금 신기하기는 하지만.
“어?”
“어? 리에프!”
쿠로오는 등 뒤에서 나는 익숙한 소리에 몸을 돌려 확인했다. 리에프였다. 리에프가 가방을 들고 온 것은 배구를 하는 B팀 체육관. 이곳의 리에프도 배구를 하는 모양이었다.
리에프는 잠깐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아, 이름이, 어,’라며 어물거렸다.
“쿠로오 테츠로.”
“아, 쿠로오! B팀 배구부 체육관은 왜? 배구부 견학하려고? 구경할 거면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들어가자. 나 배구부거든.”
“배구하는구나. 역시 키가 크다 했어. 난 오늘은 견학이지만, 체력이 붙으면 배구부에 들어가려고.”
“배구부 입부를 환영해, 쿠로오.”
“고마워. 아, 그런데 호칭은 하이바가 좋을까? 나만 이름을 부르는 건 너무 친근한 것 같아서.”
“아니야, 이름으로 불러줘. 네가 불편하면 나도 이름으로 부를까?”
리에프는 어느 샌가 쿠로오 손을 잡고 붕붕 흔들기 시작했다. 역시 리에프는 세계가 달라도 뭔가 커다란 동물 같은 느낌이다. 저 발랄함이 진정한 1학년의 발랄함이지. 쿠로오는 스스로 한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고 말하려고 했다.
“쿠로!”
체육관에서 나와 리에프로부터 쿠로오를 지키겠다는 듯 앞에 서는 켄마가 아니었다면.
“켄마?”
“쿠로? 이상한 짓 당하지 않았지?”
“리에프와 인사만 했는데, 이게 이상한 건가?”
“리에프?”
쿠로오를 보던 켄마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앞에 서있는 리에프를 향했다. 쿠로오도 켄마의 시선을 따라 리에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리에프는 아까 자신과 대화를 할 때의 순수함은 없었다는 듯,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언제 쿠로에게 접근했어? 하이바 선배.”
“코즈메가 선배라고 불러주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인데. 화가 많이 났나봐? 뭐, 그것보다 네가 코즈메가 말했던 오메가 쿠로오구나. 어제 만나고 나서 배구부 입부는 어떠냐고 물어보려고 그랬는데 네가 오는 거였다니 잘 되었네. 잘 부탁해, 쿠로오.”
리에프는 켄마에게 말을 할 때까지만 해도 비릿하게 웃고 있더니, 쿠로오를 볼 때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다시 악수를 청하는 듯한 리에프의 팔을 켄마가 쳐내자, 리에프는 눈을 접어 곱게 웃었다.
억제제 잘 먹고 다닐게. 걱정하지 말고 배구부에 와, 쿠로오. 리에프는 그렇게 손을 살랑거리듯 흔들더니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리에프에게서 눈을 떼고 앞을 보자, 쿠로오는 자신을 관찰하는 노란색 눈동자와 마주했다.
“쿠로, 주장은 언제 만났어?”
“어제 복도에서. 그것보다 리에프가 주장이었어? 선배?”
내가 있던 곳에서는 리에프가 후배라서 당연히 후배인 줄 알았는데. 3반 교실에서 나오는 걸 봤다고? 믿을 수 없다는 듯 필터를 거치지 않고 말을 하는 쿠로오를 보던 켄마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언제 봤다고 친근하게 말을 걸고 있어. 켄마의 앙다문 입술 사이로 소리가 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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