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토는 언제나 밤이 무섭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보쿠토가 혼자 잘 정도로 철이 빨리 들었다며 대견해했다. 하지만 보쿠토는 철이 든 게 아니었다. 그저 밤마다 찾아오는 요정을 기다렸다.
"안녕, 보쿠토. 안 자고 있네?"
"쿠로오!"
보쿠토가 크게 말하며 일어나려하자 쿠로오는 멈추라는 몸짓을 했다.
"착한 아이는 잘 시간이랍니다."
"나는 쿠로오와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
"으음, 베개요정은 착한 아이한테만 올 수 있는데. 늦게 자면 나쁜 아이야."
쿠로오의 말에 보쿠토의 눈썹이 추욱 처졌다. 오늘밤 쿠로오와 이야기를 하는 것과 내일부터 쿠로오가 오지 않는 것을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쿠로오가 웃었다.
"자기 전까지만, 조용히 말하면 괜찮아."
그 말에 보쿠토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새가 비밀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그리라고 해서 쿠로오를 그렸어."
"난 요정인 걸?"
"응, 그래서 요정이라고 말했어!"
"뭐, 비밀은 아니니까."
"잠이 들기 전에 오는 요정이라고 했는데, 유치원 친구들 중에서 아무도 만난 적이 없대."
쿠로오가 낮게 웃었다. 거짓말쟁이라는 말은 안 들었어? 그럼, 나는 거짓말 안하는 걸! 요즘은 요정을 믿는 사람도 없을 텐데. 있으니까 있다고 했어. 주위에 좋은 친구들을 두었네.
쿠로오의 말에 보쿠토가 싱긋 웃었다. 쿠로오도 좋은 친구야!
"요정을 못 보는 아이가 많아서 그래.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운이지."
"쿠로오, 내일도 올 거야?"
"응. 네가 나를 보지 못해도 매일매일 올게."
"아냐. 나는 항상 쿠로오를 볼 거야. 그리고 매일매일 말 할 거야."
보쿠토의 말이 점점 늘어졌다. 쿠로오는 보쿠토의 뺨에 뽀뽀를 하며 말했다.
"이제 자, 꼬마 보쿠토. 나쁜 꿈이 오지 않도록 내가 지키고 있을게."
고마워 쿠로오. 보쿠토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쿠로오가 웃었다. 보쿠토는 이미 잠이 든 것처럼 고롱고롱 편안한 숨소리를 냈다. 어떻게 이리도 귀여울까. 지금까지 만난 아이 중에서 제일 사랑스러웠다. 네가 어른이 되어 날 보지 못한 다해도 매일매일 올게. 쿠로오의 말을 보쿠토가 들은 것처럼 미소 지었다.
쿠로오는 보쿠토가 편히 잘 수 있도록 자장가를 흥얼거렸다. 무서운 꿈이 오지 않기를, 그래서 활짝 웃으며 일어날 수 있기를, 네가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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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토의 울음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혼자서 잠도 잘 자고, 매일 방싯방싯 웃던 보쿠토가 울자 보쿠토의 부모님도, 보쿠토의 집에서 일을 도와주는 사람도 모두 당황해했다.
"나 이 침대 싫어! 예전에 쓰던 걸로 쓸래!"
"코타로, 너한테는 그 침대가 작아서.."
"싫어, 싫어!! 쓰던 침대가 좋아! 나 말 잘 들을게. 착하게 있을게. 그러니까 침대 이거 말고 쓰던 거 줘."
보쿠토가 엉엉 울었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다른 아이에게 빼앗겨도 눈물만 글썽이던 보쿠토가 계속 눈물을 쏟았다.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계속 울었다.
보쿠토가 울다가 탈진할 것 같아, 보쿠토의 부모님은 보쿠토를 달래려 이전에 쓰던 침대를 처분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 침대는 이미 다른 가구로 재조립 중이라 침대로 돌아올 수 없다는 연락만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왔다.
부모님한테서 예전 침대를 못 본다는 말을 들은 보쿠토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왜 말도 안하고 바꿨어! 새 거 필요 없는데! 바꾸면 쿠로오가 못 오는데!! 이제 매일매일 무서운 꿈이 날 보러 올 거야. 쿠로오가 없으니까, 이제 무서운 꿈이 날 괴롭히러 올 거야.
아프다고 유치원 안 갈걸. 그러면 침대 못 가져가게 막았을 텐데. 미워, 침대 바꾼 사람 다 미워! 엄마 미워! 아빠도 미워! 누나도 형도 다 미워!"
보쿠토는 그렇게 울다가 쓰러져 잠들었다. 보쿠토가 눈을 뜨니 깜깜한 밤이었다. 새 침대 위에서 처음 맞는, 혼자인 밤이 무서웠다. 쿠로오를 찾았으나, 매일 베개 옆으로 오던 베개요정은 보이지 않았다. 보쿠토는 서러워서 다시 울었다. 퉁퉁 부은 눈이 아파서, 슬퍼서 계속 울었다.
"그만 울어, 보쿠토! 이러다가 눈물에 맞아서 못 오겠어!"
보쿠토는 쿠로오의 목소리에 흐느끼는 것을 멈췄다. 갑자기 터진 기침에 당황하면서도 보쿠토는 눈물이 쿠로오에게 떨어지지 않게 두 손을 얼굴로 가져다댔다.
"안 울게, 안 울 거니까 내일도 와."
"그래, 지금 눈에 맺힌 것 까지만 울고 그만 울어."
크흥, 보쿠토는 쿠로오가 가져다 준 휴지에 코를 풀었다. 보쿠토는 계속 훌쩍였지만, 더 울지는 않았다.
"내가 늦게 와서 무서운 꿈이라도 꿨어?"
"아니."
"그러면 왜 울었어?"
"쿠로오가, 못 오는 줄 알고. 침대 바꿔서 못 오는 줄 알고."
보쿠토의 말에 쿠로오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요정이 웃는 소리야?-라는 보쿠토의 물음에 쿠로오는 눈가까지 손으로 훔치며 웃었다.
"조금 헤매기는 했는데, 못 올 정도는 아니야. 멀리 떠난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쿠로오가 지난번에는 베개 바꿔서 못 찾아왔다 했잖아."
"그건 장난이고."
어깨를 으쓱하는 쿠로오를 보면서 보쿠토가 침대에 기댔던 등을 구부리며 소리쳤다.
"쿠로오!! 믿었는데!! 난 그래서 무서웠는데!"
"금방 못 온다는 소리였지. 이 근처에 아이는 너뿐이니까 찾을 수 있었고."
"내가 계속 아이면 어디에 있어도 찾을 수 있어?"
"아니. 보쿠토는 더 커야지. 더 커서 침대도 더 큰 거 쓰고."
"싫어. 쿠로오가 안 오면 싫어. 난 안 클 거야."
보쿠토는 안 들린다는 듯 손을 귀에 가져다 대었다. 이러면 안 들려! 안 들려! 쿠로오 말은 하나도 안 들려!
루루루-하며 노래까지 하는 보쿠토를 보던 쿠로오가 손으로 귀를 가리켰다. 그리고 제 입을 가리켰다. 보쿠토, 손 내려놔. 쿠로오가 그렇게 말했지만 보쿠토는 요정의 입술까지 읽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쿠로오는 계속해서 손으로 귀와 입을 가리켰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보쿠토가 손을 내렸다.
"보쿠토. 커도 만날 수 있어."
"안 크면 그냥 만날 수 있는 걸!"
"네가 어딘가로 떠날 때 말해주면 돼."
"싫어, 난 안 클 거야. 그러니까 매일 와."
"커도 매일 올 거야. 쿠로오 씨는 보쿠토의 베개요정이니까."
"...침대 바꿔도?"
보쿠토의 눈이 반짝였다. 마치 요정을 처음 본다고 하던 때 표정처럼 반짝거린다고 쿠로오가 생각했다.
"응. 조금 헤매겠지만."
"그러면 다음에는 더 큰 침대로 할게. 엄마 침대만큼 큰 걸로 할게! 그리고 계속 안 바꿀 거야!"
그래그래. 쿠로오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보쿠토도 따라 웃었다. 그러면 이제 누워서 다시 자야지? 쿠로오의 말에 보쿠토는 벽에서 붙였던 몸을 침대로 눕혔다. 보쿠토가 베개를 베고 고개를 돌리자 쿠로오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너무 부었는데. 쿠로오는 눈이 퉁퉁 부은 보쿠토를 보며 걱정했다.
"내일 열이 날지도 모르겠어."
"열? 내가 침대에 누워있으면 낮에도 와? 그러면 아픈 거 조금 좋을지도."
"아니. 낮에는 올 수 없어. 낮에 오면 요정왕님한테 혼나."
"쿠로오 혼나지 마. 나 안 아플 거니까 낮에 안 와도 돼!"
"보쿠토가 이렇게 잠 안자면 혼날지도."
"아냐, 나 잘 거야! 이제 자!!"
보쿠토는 허겁지겁 이불을 목까지 덮었다. 쿠로오를 보던 머리도 돌려 천장을 향하게 하고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자다 깬 탓인지 잠이 오질 않아 보쿠토는 얼굴을 찌푸렸다. 자야 되는데, 자야 되는데. 안 그러면 쿠로오 혼나는데. 잠아 와라, 빨리 와라.
"잠이 안 와?"
"아니 보쿠토 씨는 이미 꿈나라야. 쿨쿨 자. 그러니까 쿠로오 혼 안나."
보쿠토가 눈을 감고 자는 시늉을 했다. 보쿠토 씨는 코 하고 있어.
"자는 사람은 말 안하는데?"
보쿠토가 실눈을 떴다. 안 잔다고 쿠로오가 먼저 떠나지 않았나 가늘게 보이는 자신의 침대 부근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여기 있어. 그러니까 실눈 뜨고 안 찾아도 돼."
"알았어?"
"응. 나는 네가 자는 걸 매일 보니까. 자는 건지 척인지 알 수 있어."
"치."
"아프지 않게 어서 자."
"쿠로오랑 더 놀고 싶은 걸."
보쿠토가 불만이 가득하다는 듯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어쩔 수 없네. 요정의 마법을 걸어줄게."
"진짜? 쿠로오 마법도 써?"
"너한테 만이야."
"어떤 건데? 응? 응?"
"네 꿈에 내가 들어가서 같이 노는 마법."
"정말?"
"그러엄. 요정은 거짓말 안 해. 눈 감아봐."
보쿠토는 쿠로오의 말에 눈을 감았다.
촉. 보쿠토의 눈꺼풀에 쿠로오의 입술이 닿았다.
"그런데 네가 꿈에서 깨면 나는 기억 못하니까 알려줘야 해?"
"응! 내가 내일 자기 전에 다 말해줄게. 꿈에서 우리 집도 구경시켜 줄게!!"
신이 나서 말하던 보쿠토가 잠들었다. 한껏 편안해진 숨소리가 들리고, 부어서 발그레한 눈가가 굳게 닫혀있었다.
쿠로오는 잠이 든 보쿠토를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가 어디에 있어도, 찾을게. 꼭 네 침대 위로 올라올게. 그러니까 너도 나를 계속 봐... 아니, 너는 그냥 나를 잊지 만 말아줘. 어른이 되고 나서 날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일주일에 한번, 아니 일 년에 한번이라도 날 생각해줘. 난 매일 올 거니까 네가 날 떠올리면 기뻐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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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토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도 쿠로오를 볼 수 있었다. 쿠로오는 이렇게 오래 보이는 건 드문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보쿠토는 자기가 멋있어서 그렇다며 자랑했다. 네네, 쿠로오가 성의 없이 대답했다.
"쿠로오! 방금 귀찮다는 듯 대답했지?"
아니? 아닌데! 쿠로오 씨는 귀찮음 같은 거 모르는 요정인데! 쿠로오가 우겼다.
"그러면 말ㄱ.. 으악!"
"뭐야, 왜 그러는데?"
"쿠로오.. 나 이가 흔들려. 뽑는 거 아프대. 무서워."
"악몽도 겁 안내는 녀석이."
"쿠로오가 있으니까 무서운 꿈은 안 무서워!!"
무서운 꿈이 오기도 전에 쿠로오가 쫒아줄 거잖아? 아니면 무서운 꿈이 들어오기 전에 깨워줄 거고. 보쿠토가 환하게 웃었다. 보쿠토가 주는 신뢰에 쿠로오도 미소 지었다. 그래, 그러면 내가 깨울 때 잘 일어나! 쿠로오의 말에 보쿠토가 해맑게 답했다. 물론이야! 쿠로오가 일 못해서 무서운 꿈 꿔도 왕님한테 안 이를게!
그래? 그것 참 고오맙네. 쿠로오가 이죽거렸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이내 보쿠토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래. 그러면 내가 친구한테 말해둘게."
"쿠로오 친구 있어?"
"실례네! 나도 친구정도는 있거든!"
"그러네. 나도 학교에 친구 있으니까.. 하지만 쿠로오는 나만 만나러 와서 친구 없는 줄 알았어. 그런데 어떤 친구야?"
"음. 치아요정."
"치아요정?"
"응. 빠진 치아를 베개 옆에 두면 그걸 가져가고 새 치아를 가져다 줘."
"신기한 요정이네."
눈이 반짝반짝해진 보쿠토를 보던 쿠로오가 웃었다. 아, 일찍 재우기는 글렀네. 그래서 쿠로오는 보쿠토에게 치아요정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주기로 했다. 원래 줄서야 되는데, 보쿠토는 내 친구니까 내가 특별히 먼저 와 달라고 부탁할게.
부탁해, 쿠로오! 신기한 요정님한테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해줘! 보쿠토가 비는 것처럼 두 손을 마주 비비며 말했다. 보쿠토의 말에 쿠로오는 눈을 치떴다.
"아니, 얏쿵이 오면 널 더 신기해 할 걸. 넌 요정을 볼 수 있으니까."
"친구 이름이 얏쿵?"
"야쿠인데, 별명 같은 거야. 아, 작다는 소리는 하지 마. 그거 싫어해."
"알았어! 안 할게!! 그런데 그 친구 언제와?"
"흔들리는 치아가 빠지면."
쿠로오 말고 다른 요정님, 보고 싶다. 언제 빠질까? 보쿠토의 목소리에 잠이 묻어나왔다. 보쿠토가 눈에 힘을 줘서 뜨고 있으려는 걸 쿠로오가 두드렸다. 어서 자. 밤이 오고, 내가 너에게 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치아가 빠지고 얏쿵이 널 보러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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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토의 이가 빠졌다. 보쿠토는 이가 쿠로오에게 빠진 걸 자랑했고, 쿠로오는 내일 얏쿵을 데려올 테니 빠진 이를 잘 가지고 있으라고 했다. 보쿠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만 믿으라고 했다.
하지만 빠진 이를 지키는 건 쉽지 않았다. 보쿠토의 집에서 세탁을 도와주는 형이 이불 시트를 털어야 하는 날이라며 갑자기 달렸고, 보쿠토는 자신이 달릴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달려가 베개 밑에 넣어둔 이를 손에 쥐었다. 보쿠토네 집에서 일하는 형은 휘파람을 불었다.
"잘 달리네? 그래도 오늘 가는 날이야."
"그제 간 거 알거든! 내가 치아요정 만나니까 부러워서 그러는 거지!"
보쿠토가 쩌렁쩌렁 소리쳤다. 그 소리에 총관리를 하는 누나가 형의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나갔다. 코타로 군, 너는 이렇게 민폐를 끼치는 남자가 되지 마렴. 누나의 말에 보쿠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쁜 사람이 되면 쿠로오가 못 온대!"
"베개요정이지?"
"응! 그래서 매일매일 잘 자!"
"그러면 요정님한테 고맙다고 과자라도 줘."
"쿠로오가 먹을까? 그러면 나 오늘 간식 안 먹고 쿠로오 줄래!"
"정말? 오늘은 코타로가 좋아하는 브라우니인데."
으음-하고 보쿠토가 고민했다. 누나가 오늘 식당에 가니 맛있었어-라면서 보쿠토를 유혹했지만, 보쿠토는 고개를 저었다. 난 쿠로오가 좋으니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 줄 거야! 쿠로오도 좋아하겠지? 보쿠토의 말에 누나는 보쿠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베개요정님도 좋아할 거야.
관리인 누나의 도움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냈다고 생각했으나, 보쿠토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쿠토네 아버지가 지붕에 이를 던져야 예쁘게 잘 난다고 한 탓이었다. 보쿠토는 온 힘을 다해서 거절했다. 싫어! 그러면 새가 주워가잖아! 난 요정님한테 주기로 했다고!!
보쿠토는 빠진 이를 누가 뺏어 갈까봐 한 손에 꼭 쥐고 밥을 먹고, 한손으로 어리숙하게 씻었다. 힘들고 불편해도 보쿠토는 이를 지켜야 했다. 쿠로오의 친구를 만날 기회인 걸.
그리고 밤이 되자, 보쿠토는 간식을 가지고 자기 방으로 가서 쿠로오를 기다렸다. 오늘은 쿠로오한테 고맙다고 말도 해야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라고, 맛있다고 이야기도 해야지!
쿠로오가 보쿠토의 눈에 비친 것은, 평소에 쿠로오가 오던 시간보다 더욱 늦은 때였다. 쿠로오, 기다렸어! 보쿠토의 환영인사에 쿠로오가 손을 흔들며 웃었다.
"안녕! 보쿠토!"
쿠로오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쿠로오는 가슴에 무언가 포장한 것 같은 주머니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쿠로오 옆에는 쿠로오의 가슴께까지 올 것 같은 친구도 함께였다.
"안녕! 오늘은 멋있는 친구와 함께네! 난 보쿠토야!"
"오, 정말 볼 수 있네? 난 야쿠! 너 요정보는 눈이 있구나!!"
야쿠가 개구지게 웃었다.
"봐, 보쿠토는 본댔지?"
"쿠로오가 본다고 할 때는 미심쩍었는데, 나까지 볼 수 있을 줄이야!"
"좀 믿어!"
보쿠토는 요정 둘이 키득거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친해보였다. 보쿠토와 쿠로오 사이보다 더. 그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보쿠토는 눈썹사이를 좁혔다. 이유는 모르지만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는데, 투정을 부릴 수도 없는 기분이었다. 답답함에 보쿠토의 입술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쿠로오와 투덕거리던 야쿠는 보쿠토를 보더니 말했다.
"아, 그런 표정하지 마. 제대로 일은 할 거니까. 치아는 어디에 있어?"
"여기."
보쿠토가 빠진 이를 야쿠에게 손으로 밀었다. 성의 없는 손짓이었지만, 야쿠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웃었다.
"좋아, 확실하게 받았다. 쿠로오!"
"보쿠토, 이거 받아."
쿠로오가 안고 있던 꾸러미를 내밀었다. 보쿠토의 한 손에 다 들어가고도 빈자리가 있을 정도로 작은 꾸러미였다. 보쿠토가 꾸러미를 빤히 보고 있자, 야쿠가 가슴을 당당하게 펴면서 말했다.
"쿠로오와 아는 사이라기에 더 넣었어!"
"이게 뭔데?"
"우리 세계 과자! 먹고 이 닦는 거 잊지 마!"
"오늘은 이 닦았는데. 내일 먹어도 돼?"
"그래!"
야쿠가 시원하게 웃었다. 바람의 요정이 웃으면 저런 웃음일 거라고, 보쿠토는 생각했다.
야쿠가 떠나려는 듯 쿠로오와 인사를 하자, 보쿠토가 급하게 말했다.
"나도 줄 거 있어! 이거, 오늘 내 간식이야! 정말 맛있어!"
보쿠토는 접시에 담긴 간식을 내밀었다. 잘 구워진 브라우니였다. 하지만 쿠로오와 야쿠에 비하면 거의 두 배는 큰 것 같았다.
"항상 잠들기 전에 있어줘서 고마워, 쿠로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이거 선물이야!"
달빛처럼 반짝이는 보쿠토의 웃음과 다르게, 쿠로오와 야쿠의 표정이 이상하게 굳었다.
"왜 그래?"
"아니, 이런 건 처음 받아봐서."
"나도 치아를 받으러 다니면서 받아본 적은 처음이야. 준적은 많지만."
"뭐어어? 그러면 자주 와! 나 간식 안 먹어도 돼!"
"아니, 우린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 못 들고 가."
못 들고 간다는 소리에 보쿠토의 표정에 우울이 깃드는가 싶더니, 가지고 가기 편하게 잘라주겠다며 보쿠토가 브라우니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렇지만 초등학생의 손놀림이라 예쁘게 떼어내기는커녕 찌그러지고, 눌려서 볼품없어졌다. 보쿠토는 브라우니를 망친 것 같아 눈물지었다. 아니, 이러려던 게 아닌데.
그런 보쿠토를 보던 야쿠가 낄낄거리고 웃더니 보쿠토가 떨군 브라우니 조각을 집어들었다.
"난 이거면 충분해! 고마워 인간친구! 다음엔 빠진 자리에 넣을 이를 가지고 올게!"
"응! 나중에 봐!"
"쿠로오 넌 잘 해봐! 좋은 인간이잖아?"
"얏쿵!!"
쿠로오의 부름을 뒤로하고 야쿠는 웃으며 재게 발을 놀렸다. 음식을 줄 정도로 친하면서 그냥 아이와 요정이라고? 보쿠토는 분명 쿠로오 널 좋아하는 거야. 야쿠는 생각을 삼키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베개요정과 인간의 시간이었다. 치아요정은 빠져줄 매너를 보일 시간. 야쿠는 보쿠토의 이를 들고 요정의 나라로 뛰어들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짧은 침묵 끝에 쿠로오가 말하며 브라우니 조각을 집어 들었다. 맛있네-라는 쿠로오의 말에 그렇지? 우리 집 브라우니는 정말 맛있다고! 다음에는 작게 미리 잘라달라고 할게. 먹기 편하게 보쿠토가 손에 붙은 브라우니를 털어내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
"아니야! 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 난 쿠로오를 좋아하니까!"
보쿠토의 말에 쿠로오의 얼굴이 붉어졌다. 야쿠가 있었다면 쿠로오의 귀와 목까지 빨갛게 익은 것을 봤겠지만, 아쉽게도 야쿠는 이미 요정의 나라로 떠난 이후였다.
쿠로오는 두 손을 들어 얼굴에 가져다대고 열을 식혔다. 인간 꼬마가 못하는 말이 없어!
"내가 좋으면, 정말 좋으면, 내가 보이지 않게 되어도 가끔 자기 전에 내 이름을 불러줘."
미친 게 분명했다. 아까 한입 먹은 브라우니에 거짓말을 못하게 하는 인간의 약이 들어있는 게 확실했다. 안 그러면 쿠로오가 마음속 깊숙이 눌러놓은 말이 이렇게 솟아날 리 없었다. 브라우니가 나한테 안 맞나봐. 쿠로오는 달아오른 귀를 잡았다. 너무 뜨거웠다.
"왜? 이제 바빠졌어? 다른 아이를 맡은 거야?"
"아니. 나는 계속 올 거야. 하지만 너는 이제 인간의 교육을 받게 되니까. 어른이 되면 우릴 볼 수 없어."
"그러면-."
"어른이 안 되겠다는 소리는 마."
"평생 아이로 있을게!"
언젠가 보쿠토와 했던 이야기로 돌아오자 쿠로오는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아팠다.
"네가 커도 나는 널 보러 온다니까!"
"싫어! 그러면 쿠로오는 나랑 눈도 못 마주치고 말도 못하잖아!"
"그래도 난 네 옆에 있어!"
"싫어! 쿠로오를 외롭게 하는 건 싫어! 안 자랄래!"
"너, 멋대로 말할래!"
"커도 요정을 보는 사람이 있다며! 내가 그 사람이 되면 되잖아! 아냐 될 거야! 난 계속 너를 보고, 말 할 거야!"
보쿠토의 고집에 쿠로오가 씩씩거렸다. 말 안 듣는 인간! 자는 모습이 요정보다도 예쁘지만, 고집 센 인간!! 쿠로오는 자기 앞에 있는 보쿠토가 인간의 아이라는 것도 잊은 채 숨겨둔 마음까지 꺼냈다.
"나중에 네가, 날 못 보게 되었을 때 울게 된다고! 받아들여!"
"난 계속 볼 거니까 그럴 일 없어!"
"보쿠토 널 위한 거야!"
"싫어, 못 보게 되는 거 싫어."
쿠로오가 마른세수를 했다. 아, 또 울렸다. 더는 울리고 싶지 않았는데. 좋아하는 인간의 아이를 울리고 싶지 않았는데. 오히려 볼 수 있는 동안 행복하기만을 바랐는데, 격해져서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되는 이야기를 꺼냈다. 보쿠토가 울 것 같아서 숨겨둔 거였는데, 왜 이게 나왔담.
쿠로오는 울고 있는 보쿠토에게 다가갔다.
"울지 마, 보쿠토. 내가 잘못했어."
"내가 못 보면, 쿠로오가 울어도 모르잖아. 그러면 내가 쿠로오를 달래줘야 할 때, 나 혼자 웃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난 그런 거 싫어."
"아니야, 안 울어."
"거짓말. 지금 울잖아."
"이거 눈물 아니야. 요정은 기쁘면 이슬을 흘려. 이건 이슬이야."
쿠로오도 울었다. 보쿠토는 쿠로오가 우는 것을 보다가 한 팔로는 얼굴을 닦고, 한 손으로 쿠로오를 태웠다. 쿠로오가 눈물에 맞아 다치지 않도록.
베개요정과 베개요정이 사랑하는 아이는 한참을 같이 울었다. 인간은 지쳐서 잠들었고, 요정은 발갛게 물든 눈가를 닦으며 해가 뜰 때까지 인간의 옆을 지키다 요정의 나라로 갔다.
보쿠토는 아침에 놀림거리가 되었다. 보쿠토의 어머니는 치아요정이 예쁜 이를 안 준다 했냐고 물었다. 보쿠토는 퉁퉁 부은 눈으로 아니라고, 얏쿵이 과자도 줬다며 작은 보따리를 보여주었다. 집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보쿠토의 상상 친구가 아니라 정말 요정이 있었다니. 요정이 정말 존재하는 것이었다니.
보쿠토는 꾸러미를 열어 조그만 과자를 자랑하듯 보여주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요정의 과자는 신기한 맛이 났다. 한 입에 다 먹은 게 아쉬울 정도로 맛있었다. 보쿠토는 입맛을 다시더니, 과자를 싼 포장지를 주머니에 곱게 접어 넣었다. 이건 요정이 있다고 알려주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쿠로오와의 추억이 사실이라는 것도 알려주는 소중한 것이었다. 보쿠토는 주머니 위로 포장지가 잘 들어있나 만져봤다. 얇은 주머니 사이로 만져지는 포장지의 감촉이, 보쿠토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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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렸을 때, 당신의 잠자리 옆에는 항상 베개요정이 있었을 거야. 지금도 있을지도 모르지. 그건 당신이 요정을 믿고 있기 때문이야. 요정을 믿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하고, 요정을 믿지 않는 사람이 생기면 요정의 나라에서 못 나오는 요정이 많아지거든.
하지만 당신은 내 이야기를 읽을 수 있으니까 요정을 믿고 있겠지? 잘 찾아봐. 요정들은 부끄럼쟁이라 잘 나타나지 않거든. 나는 보쿠토를 좋아하는 특별한 경우라서 보쿠토와 자기 전에 대화를 하러 보쿠토 앞에 나타난 거고. 그러니까-.
"쿠로오! 혼자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해?"
"네 험담."
"쿠로오 너무해!"
"네네, 부엉이 씨, 조금만 기다려"
당신의 주위에는 요정이 있어. 당신이 보지 못해도, 당신의 옆에서 악몽을 밀어내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가끔 악몽이 와도 무서워하지 마. 네 베개요정이 힘껏 밀어낼 테니까.
"쿠-로-오!"
"알았어, 금방 가!"
그러면 오늘도 좋은 꿈 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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